[말러 - 교향곡 9번] 거장들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9번 교향곡의 저주'를 피해 가려고 꼼수를 쓰다가 9번을 쓰고 세상을 떠난 말러의 비극
클래식 음악사에는 수많은 전설과 미신이 존재합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이야기 가운데 하나가 바로 ‘교향곡 9번의 저주’입니다. 이는 위대한 작곡가들이 아홉 번째 교향곡을 완성한 뒤 더 이상 다음 교향곡을 남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는 미스터리한 전설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는 단순한 우연의 일치로 여겨지기도 하지만,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음악가들에게 이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후기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거장 구스타프 말러(Gustav Mahler)는 이 전설을 진심으로 두려워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이 저주를 피해 가기 위해 나름의 ‘꼼수’를 사용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결국 그는 교향곡 9번을 완성한 뒤 세상을 떠나면서 오히려 전설을 더욱 강력하게 만든 인물이 되고 말았습니다.
시작은 베토벤이었다
‘9번의 저주’라는 이야기는 일반적으로 루트비히 판 베토벤에게서 시작됩니다.
베토벤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교향곡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교향곡 제9번 「합창」을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정식 번호가 붙은 교향곡 제10번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는 단순한 우연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후 비슷한 사례가 계속해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프란츠 슈베르트 역시 교향곡 제9번 이후 생을 마감했고, 안톤 브루크너 또한 교향곡 제9번을 완성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특히 브루크너는 제9번 마지막 악장을 끝내지 못한 상태로 생을 마감했는데, 이 사실은 음악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습니다.
여기에 안토닌 드보르자크 역시 사실상 마지막 완성 교향곡이 제9번 「신세계로부터」였다는 점까지 더해지면서 사람들은 묘한 공통점을 발견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진정한 교향곡 작곡가는 아홉 번째 작품을 넘기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음악가들 사이에서 퍼져 나가게 되었습니다.
누구보다도 미신을 두려워했던 말러
말러는 오스트리아 후기 낭만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인물입니다.
그의 교향곡들은 규모와 구성 면에서 기존의 틀을 뛰어넘었습니다.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성악을 결합하고 인간 존재와 죽음, 우주와 자연, 삶의 의미까지 탐구하는 철학적 깊이를 담아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예술가도 죽음에 대한 불안에서는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말러는 특히 자신의 건강 문제와 죽음에 대해 매우 민감한 사람이었습니다. 1907년은 그에게 최악의 해였습니다.
사랑하던 큰딸 마리아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빈 궁정오페라 음악감독 자리에서도 물러나야 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심장 질환 진단까지 받게 됩니다.
이 시기부터 말러는 자신의 죽음을 더욱 현실적으로 의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때 그를 괴롭힌 것이 ‘9번의 저주’였습니다.
이미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의 사례를 잘 알고 있던 말러는 자신 역시 같은 운명을 맞이할 수 있다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저주를 피하기 위한 묘한 선택
당시 말러는 사실상 자신의 아홉 번째 교향곡에 해당하는 대규모 작품을 작곡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 작품에 교향곡 번호를 붙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작품의 제목을 「대지의 노래(Das Lied von der Erde)」라고 정했습니다.
이 작품은 규모와 구조 면에서 사실상 교향곡에 가깝습니다. 오케스트라와 성악 독창이 결합된 대작이며, 전체적인 구성 역시 전형적인 말러식 교향곡의 특징을 보여줍니다.
실제로 오늘날 많은 음악학자들은 「대지의 노래」를 사실상 말러의 아홉 번째 교향곡으로 간주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말러 본인은 의도적으로 숫자를 피했습니다.
그는 "이 작품을 교향곡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저주도 피해 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마치 운명을 속이려는 마지막 시도와도 같았습니다.
결국 그는 「대지의 노래」를 발표한 뒤 다음 작품에 ‘교향곡 제9번’이라는 번호를 붙이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전설의 숫자 9를 넘었다고 안도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름답고도 쓸쓸한 교향곡 9번
1909년에 완성된 말러의 교향곡 제9번은 그의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깊은 철학적 성찰을 담은 걸작으로 평가받습니다.
이 작품은 죽음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삶에 대한 애착을 놓지 않는 복잡한 감정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특히 마지막 악장은 음악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별 인사 가운데 하나로 평가됩니다.
점점 느려지고 희미해지는 선율은 마치 생명이 서서히 사라지는 과정을 연상시킵니다.
청중들은 이 음악을 들으며 마치 누군가가 세상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 장면을 목격하는 듯한 감정을 경험하게 됩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말러가 이 곡을 작곡할 당시 실제로 자신의 죽음을 예감했다는 기록은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후대의 청중들은 이 작품에서 놀라울 정도로 강한 ‘이별의 정서’를 발견합니다.
그 때문에 교향곡 제9번은 종종 말러 자신의 유언장 같은 작품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결국 저주는 끝나지 않았다
말러는 교향곡 제9번을 완성한 뒤 곧바로 다음 작품인 교향곡 제10번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마침내 ‘9번의 저주’를 극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운명은 다른 결말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1911년 말러는 심장 질환이 악화되면서 5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납니다.
그가 작업 중이던 교향곡 제10번은 완성되지 못한 채 남겨졌습니다.
결국 말러 역시 교향곡 제9번 이후 완전한 다음 교향곡을 남기지 못한 셈이 되었습니다.
이 사건은 음악계에 큰 충격을 안겼고, ‘9번의 저주’라는 전설은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실제로 이후에도 여러 작곡가들이 이 전설을 의식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물론 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이는 통계적 우연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설명하기 어려운 공통점 속에서 특별한 의미를 발견하려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말러의 경우는 그 우연이 너무도 극적이었기에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전설보다 더 강하게 남은 음악
오늘날 우리는 ‘9번의 저주’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여전히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한 미신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 이면에는 죽음을 두려워하면서도 예술을 통해 삶의 의미를 찾으려 했던 한 인간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말러는 운명을 피해 보려 했습니다. 숫자를 바꾸고 이름을 바꾸며 전설을 피해 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피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은 죽음을 넘어 오늘날까지 살아남았습니다.
특히 교향곡 제9번은 삶의 끝자락에서 인간이 느낄 수 있는 슬픔과 아름다움, 체념과 희망을 동시에 담아낸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어쩌면 말러가 남긴 가장 위대한 승리는 저주를 피한 것이 아니라, 죽음마저 초월하는 음악을 남긴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