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이야기

[보로딘 - 교향곡 2번] 본업은 유명한 '화학 교수'였는데, 취미로 짬짬이 작곡을 하다가 세계적인 명곡을 남긴 '프로 투잡러'의 이야기

tulip2u 2026. 6. 3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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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로딘의 삶은 클래식 음악사에서 매우 독특한 사례로 꼽힙니다. 대부분의 작곡가가 음악을 본업으로 삼았던 것과 달리, 그는 당대 러시아를 대표하는 화학자이자 의과대학 교수였습니다. 연구와 강의, 학술 활동으로 바쁜 일상을 보내면서도 남는 시간을 활용해 작곡했고, 그 결과 오늘날까지 사랑받는 걸작들을 남겼습니다. 특히 교향곡 제2번은 그의 음악적 재능이 가장 완성도 높게 드러난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취미로 작곡한 작품'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줍니다.



1. 보로딘, 화학 교수이자 작곡가


19세기 러시아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이 바로 알렉산드르 보로딘입니다. 그는 1833년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음악에 관심을 보였지만, 정식 진로는 음악이 아니라 의학과 화학이었습니다.

보로딘은 의학을 공부한 뒤 화학 연구에 몰두했고, 결국 상트페테르부르크 의학외과학교의 화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당시 그는 유기화학 연구와 논문 발표, 학생 교육에 많은 시간을 투자했으며 러시아 화학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여성 교육에도 깊은 관심을 가져 러시아 여성들에게 의학 교육의 기회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했던 학자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음악가 이전에 훌륭한 교육자이자 과학자였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작곡은 언제 했을까요?

놀랍게도 대부분의 작품은 연구가 끝난 뒤 밤이나 휴일을 이용해 조금씩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도 종종 "나는 일요일 작곡가(Sunday Composer)"라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2. '강력한 소수'와 함께한 음악 활동


보로딘은 러시아 국민음악 발전을 이끌었던 작곡가 모임인 '강력한 소수(The Mighty Handful)'의 핵심 멤버였습니다.

이 모임에는 발라키레프, 무소륵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퀴 그리고 보로딘이 참여했습니다. 이들은 독일과 프랑스 음악을 모방하기보다 러시아만의 민속 선율과 역사, 문화를 담은 음악을 만들고자 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 가운데 전문 음악가보다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보로딘은 가장 바쁜 학자였기 때문에 작곡 속도가 매우 느렸습니다.

새로운 악상을 떠올려도 연구 일정 때문에 며칠, 혹은 몇 달씩 악보를 손대지 못하는 일이 흔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한 작품을 오랜 시간 다듬었기 때문에 완성도는 매우 높았습니다.



3. 교향곡 제2번, 러시아의 영웅을 그리다


보로딘의 대표작 가운데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이 바로 교향곡 제2번 B단조입니다.

이 작품은 1869년 무렵 작곡을 시작했지만 본업이 워낙 바빴던 탓에 완성까지 약 7년이 걸렸습니다. 그 사이 연구와 강의는 계속 이어졌고, 오페라 이고르 공 작업도 병행했습니다.

교향곡 제2번은 흔히 '영웅 교향곡'이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작곡가가 공식적으로 제목을 붙인 것은 아니지만, 웅장하고 힘찬 분위기 때문에 러시아의 전설적인 기사와 영웅들을 떠올리게 한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특히 1악장은 묵직한 금관악기의 울림과 강렬한 리듬이 인상적이며, 러시아 특유의 장엄한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반면 2악장은 활기차고 경쾌하며, 3악장은 아름답고 서정적인 선율로 보로딘 특유의 따뜻한 감성을 들려줍니다.

마지막 4악장은 축제처럼 화려하게 마무리되며 작품 전체를 웅장하게 완성합니다.

오늘날에도 세계 여러 오케스트라가 즐겨 연주하는 러시아 교향곡의 명작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4. 느린 작곡 속도, 그러나 뛰어난 완성도


보로딘은 스스로도 작곡이 느리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그에게 "조금만 더 음악에 집중하면 얼마나 많은 걸작을 남겼을까"라며 아쉬워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보로딘은 연구를 포기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화학 연구 역시 자신에게는 음악만큼 중요한 삶의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는 논문 작성 도중 음악 악상을 메모하기도 했고, 반대로 작곡하다가 연구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과학적 사고와 예술적 감성이 한 사람 안에서 자연스럽게 공존했던 보기 드문 인물이었습니다.



5. 안타까운 갑작스러운 죽음


1887년 보로딘은 동료들과 열린 무도회에서 갑작스럽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53세였습니다.

당시 그는 오페라 이고르 공을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이 작품은 이후 친구였던 림스키코르사코프와 글라주노프가 남겨진 악보를 정리하고 보완하여 완성했습니다.

만약 보로딘이 조금 더 오래 살았다면 더 많은 명곡을 남겼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6. 취미가 남긴 세계적인 명곡


오늘날 '프로 투잡러'라는 표현은 하나의 직업에 만족하지 않고 여러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보로딘은 이 표현이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자신의 삶으로 이를 증명한 인물이었습니다.

낮에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화학 실험을 하며 연구를 이어갔고, 밤에는 악보 앞에 앉아 러시아의 아름다운 선율을 써 내려갔습니다.

그 결과 교향곡 제2번, 오페라 이고르 공, 그리고 현악사중주 제2번의 녹턴과 같은 명곡이 탄생했습니다.

특히 교향곡 제2번은 전문 작곡가 못지않은 치밀한 구성과 풍부한 관현악법을 보여주며 지금도 러시아 음악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손꼽힙니다.

보로딘의 삶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일깨워 줍니다. 반드시 하나의 직업만이 인생을 규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자신의 본업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열정을 잃지 않고 꾸준히 이어간 취미가 결국 세계 음악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탄생시킨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보로딘을 단순히 화학 교수도, 단순한 작곡가도 아닌 과학과 예술을 모두 빛낸 르네상스형 인물로 기억합니다. 그의 교향곡 제2번을 감상하다 보면 웅장한 러시아의 풍경뿐 아니라, 바쁜 연구실과 강의실을 오가면서도 끝내 음악에 대한 꿈을 놓지 않았던 한 사람의 뜨거운 열정을 함께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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