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 이야기

[사티 - 쾌락주의자의 다이어트] 오직 하얀색 음식(계란, 소금, 쌀, 사과 등)만 골라 먹었던 기괴한 식습관과 식탁 위의 비화

tulip2u 2026. 8. 2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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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음악사를 이야기하다 보면 작품만큼이나 독특한 삶을 살았던 작곡가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중에서도 프랑스 작곡가 에릭 사티는 유난히 설명하기 어려운 인물입니다. 〈짐노페디〉와 〈그노시엔느〉처럼 단순하면서도 신비로운 음악을 남긴 작곡가였지만, 정작 그의 일상은 음악만큼이나 엉뚱하고 기발했습니다.

특히 사티에게는 아주 유명한 식습관에 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바로 흰색 음식만 먹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달걀과 설탕, 소금, 코코넛, 쌀, 순무 같은 음식부터 심지어 뼈를 갈아 만든 것과 솜으로 만든 샐러드까지 등장합니다. 얼핏 보면 실제로 이런 식사를 평생 고집했던 기괴한 식습관처럼 들리지만, 이 이야기를 이해하려면 사티 특유의 유머와 풍자 감각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1. 사티의 식탁에는 왜 흰색 음식만 올라왔을까요?


사티가 남긴 글 가운데에는 자신의 하루 일과와 생활방식을 익살스럽게 묘사한 글이 있습니다. 1913년 발표된 음악가의 하루라는 글에서는 예술가의 하루를 지나치게 정확한 시간 단위로 쪼개 놓고, 식사 시간까지 분 단위로 기록합니다.

점심은 12시 11분에 시작해서 12시 14분에 끝납니다. 저녁은 7시 16분에 시작해서 7시 20분에 끝납니다. 영감이 떠오르는 시간과 승마를 하는 시간, 수영이나 사색을 하는 시간까지 정해져 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사티는 자신이 흰색 음식만 먹는다고 적었습니다. 달걀, 설탕, 소금, 코코넛, 송아지고기, 쌀, 순무, 흰 치즈, 껍질을 벗긴 생선 등이 그 목록에 포함됩니다. 심지어 흰 물에 익힌 닭고기와 캄퍼를 넣은 소시지, 갈아낸 뼈, 솜으로 만든 샐러드 같은 황당한 음식도 등장합니다. 와인을 끓인 뒤 식혀서 푸크시아 꽃의 즙과 섞어 마신다는 설명까지 이어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 내용을 문자 그대로 사티의 실제 식단이라고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최근의 연구에서는 이 흰색 음식 식단이 사티의 실제 생활을 기록한 자서전적 고백이라기보다, 당시 문학과 예술을 향한 사티 특유의 아이러니와 풍자에 가까운 글이라고 분석합니다. 특히 19세기 말 프랑스 문학에서 유행했던 퇴폐적인 미학과 연결해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2. 기괴한 식단보다 더 웃긴 것은 식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사티의 유머는 음식의 종류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이 식사를 할 때 절대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썼습니다. 이유는 말을 하다가 목이 막혀 질식할까 봐서라고 설명합니다. 이 역시 지나치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도 안 되는 논리를 펼치는 사티식 유머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재미있는 것은 그의 하루 일과 전체입니다.

사티는 예술가라면 자신의 삶을 철저하게 조직해야 한다는 듯이 하루를 분 단위로 계획합니다. 영감을 받는 시간까지 10시 23분부터 11시 47분까지 정해 놓았습니다. 저녁 식사를 단 4분 만에 끝내고, 이후에는 소리 내어 교향곡을 읽는 시간을 갖습니다.

하지만 실제 사티의 삶은 이런 완벽하게 정돈된 시간표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그의 글에는 일부러 과장된 표현과 허구적인 설정이 가득합니다. 집에는 원형 침대가 있고, 머리를 내놓을 구멍이 있으며, 하인이 매시간 체온을 재준다는 식의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의사가 담배를 피우라고 권했다는 황당한 대목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 글은 건강한 생활을 위한 식단표라기보다는 사티가 만들어낸 일종의 코미디에 가깝습니다.



3. 흰색이라는 색에 숨겨진 사티의 미학


그렇다면 사티는 왜 하필 흰색을 선택했을까요?

흰색은 단순한 색깔을 넘어 당시 예술에서 순수함, 금욕, 공허함, 인공적인 아름다움 등을 상징할 수 있었습니다. 사티는 이러한 관념을 진지하게 설명하기보다 엉뚱한 방식으로 뒤집어 버렸습니다.

화려한 요리와 고급 식재료를 자랑하는 대신 흰색이라는 기준 하나만 던져 놓고, 그 기준에 맞는 음식이라면 무엇이든 식탁 위에 올립니다. 달걀과 쌀처럼 평범한 음식 사이에 갈아낸 뼈와 솜 샐러드 같은 황당한 재료를 끼워 넣는 방식입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사티의 음악과 생활방식이 묘하게 연결됩니다.

사티는 기존 음악의 권위와 진지함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그것을 살짝 비틀고,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작곡가였습니다. 음악에 붙이는 제목부터 연주 지시까지 그의 작품에는 언어적 농담과 엉뚱한 상상력이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니 흰색 음식이라는 규칙 역시 사티가 자신의 삶에 적용한 또 하나의 장난스러운 예술적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4. 그런데 사티는 정말 음식을 싫어했던 사람일까요?


흥미롭게도 사티에게는 정반대의 모습도 발견됩니다.

사티가 남긴 식탁에 관한 다른 글에서는 음식과 식사의 즐거움 자체를 상당히 긍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그는 식탁을 일종의 제단처럼 표현하면서 식사라는 행위를 중요한 의식처럼 바라보았습니다.

특히 친구 클로드 드뷔시의 집에서 여러 해 동안 함께 식사했던 추억을 회상하면서 달걀과 양고기 요리를 맛있게 먹었던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단순하고 제대로 만든 음식에 대한 애정도 드러납니다.

또 다른 기록에서는 사티가 지나치게 기름지고 풍부한 음식은 좋아하지 않았지만 식전주를 즐겼다는 증언도 전해집니다. 심지어 식탁을 떠날 때 브리오슈를 챙겨 먹는 습관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런 기록을 함께 보면 사티를 평생 흰색 음식만 먹었던 극단적인 식이요법가로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해석입니다.



5. 사티에게 식사는 또 하나의 예술적 농담이었습니다


사티의 흰색 음식 이야기가 지금까지도 재미있게 회자되는 이유는 단순히 이상한 식습관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는 사람들이 예술가에게 기대하는 진지함과 천재성이라는 이미지를 끊임없이 비틀었습니다. 작곡가는 고뇌해야 하고, 규칙적으로 훈련해야 하며, 엄숙한 태도로 예술을 대해야 한다는 통념에 사티는 엉뚱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 답이 때로는 흰색 음식이었고, 때로는 말도 안 되는 시간표였으며, 때로는 이상한 제목의 피아노곡이었습니다.

그래서 사티의 식탁을 바라보는 가장 재미있는 방법은 그가 정말 매일 달걀과 쌀만 먹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왜 사티가 자신의 식사마저 하나의 우스꽝스러운 예술 작품처럼 만들어 놓았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에게 일상과 예술 사이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었습니다. 음악을 만들 때도 관습을 비틀었고, 글을 쓸 때도 상식을 뒤집었으며, 자신의 생활을 묘사할 때조차 사실과 농담을 교묘하게 섞었습니다.

결국 사티의 흰색 음식 식단은 실제 다이어트라기보다는 사티라는 사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은 초상화에 가깝습니다. 평범한 달걀 하나를 식탁 위에 올려놓으면서도 그 주변에 엉뚱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사람. 진지한 예술가라는 틀을 거부하면서도 누구보다 독창적인 음악을 만들어낸 사람.

아마 그래서 사티의 음악은 지금 들어도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습니다.

그의 음악처럼 그의 식탁에도 불필요한 장식은 많지 않습니다. 다만 아주 단순한 규칙 하나를 세워놓고, 그 규칙을 끝까지 밀어붙여 전혀 예상하지 못한 웃음을 만들어냅니다.

흰색 음식만 먹는 작곡가라는 기묘한 일화 뒤에는 바로 그런 사티의 예술관이 숨어 있었던 셈입니다. 그리고 그 엉뚱한 식탁은 오늘날까지도 그의 음악만큼이나 독특한 사티의 초상으로 남아 있습니다.

※ 참고로 사티의 흰색 음식 이야기는 실제 식단에 관한 기록으로 단정하기보다, 1913년경 발표된 음악가의 하루라는 풍자적이고 허구적인 글의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후대에 이 이야기가 실제 식습관처럼 널리 소개되면서 사티의 괴짜 이미지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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